
명 천계 3년 (서기 1623년) 네덜란드인이 안평에 단순한 벽돌성을 세운 것이 안평고성의 최초 형태가 되었다. 서기 1624년 (천계 4년) 네덜란드인이 펑후에서 후퇴해 대만으로 오면서 원래의 옛성 자리에 매우 큰 규모의 성곽 「오륜치성」을 다시 세웠는데 「열란차성」 또는 「대만성」이라고도 불리웠다. 행정 중심인「내성」과 방어용의 「외성」이 있다. 당시 이 성곽은 네덜란드인이 대만섬 통치와 대외 무역을 위한 주축으로 사용되었다.
명 영력 16년 (서기 1662년)에 정성공이 네덜란드인을 몰아낸 후, 3대가 이 성에서 거주하면서 청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부활시키자는 대업을 기획하여 「왕성」이라고도 불리운다. 청이 들어선 후, 정치 중심이 부성내로 이전하면서 성곽의 중요성은 점차 약해졌고, 성벽도 무너져 보수가 안되었다. 당시 주민들이 보수를 했으나 청나라가 「억재금성」을 건축하면서 이곳의 벽돌을 가져가 자재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광복 후에 「안평고성」으로 개명되었고, 현재의 주요 건물—안평고적 기념관과 전망대는 일제시대의 세관 기숙사와 광복 후 관광을 위해 각각 세워진 것으로, 진정한 네덜란드 시기의 유적은 고성 북측 발코니 아래 두 볼록의 내성 반원 성곽의 부서진 흔적과 고성 전방 길가에 원래 외성 담벼락이었던 벽돌담 뿐으로서, 역사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다.
국가 1급 유적으로 지정된 오늘날 타이난 현정부도 관광발전을 위해 부분 공간을 개조하여 전람실로 만들었는데, 정부 기관 자체가 소장한 문물의 전시 뿐 아니라 치메이 박물관등의 민간 전시 단체로부터 많은 진귀한 문물을 대여받아 일반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또한 원내도 적당한 보수를 거쳐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성곽 및 건축물로 보존할 계획으로서, 참관 관광객들에게 문물 관람 뿐 아니라 옛건축물을 통해 당시 안평의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